이단의 정체
오늘날 수많은 목사와 수많은 성도들이 있지만, 성도들의 불의를 보고도 목사들은 왜 그들에게 따끔하게 지적하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있지 못하기 때문에 성도들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도 바른 소리 한마디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주는 것만을 미덕 즉, 사랑으로 알고 성도들에게 그것을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내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면 실상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까 싶어서 뻔히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말 한마디 못하고 속으로 끙끙 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자신이 주님 앞에 바로 서지 않고 남을 지적하고 책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가를 우리가 헤아려볼 수 있다.
이런 자들은 성도들의 허물을 덮는데서 그치지 않고 한 발짝 더 나아가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성도들에게 축복까지 하면서 성도들을 더 위험한 구렁텅이속으로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처럼 위엄 있는 어조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 세상 어느 누가 그 말을 듣고 싫어하겠는가?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신의 행위와 상관없이 목사 타이틀을 달고 있는 자가 무조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것이라고 하는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축복을 받아낼 요량으로 온갖 아양을 다 떨면서 달려드는 것이다.
그럴 때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귀신(죽은 영)들은 목사들의 입을 통해서 더욱더 달콤한 목소리로 성도들에게 다가간다. 즉시로 성경 말씀을 인용하여 “걱정하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하며 너희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거짓목사들의 이 달콤한 속삭임에 안 넘어갈 성도들이 몇이나 되겠는가? 이런 일은 비단 오늘날만 있었던 일이 아니고, 이미 구약시대에도 버젓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미가서에서 그것을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 도다. 이런 선지자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러므로 너희가 밤을 만나리니 이상을 보지 못할 것이요 흑암을 만나리니 점치지 못하리라 하셨나니 이 선지자 위에는 해가 져서 낮이 캄캄할 것이라” (미가서 3:5-6)
이 말씀을 오늘날 교회 안에 적용해보면 오늘날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성도들에게 온갖 명목의 헌금을 강요하고 있는가? 어쩌다 헌금을 적게 하는 자들에게는 여지없이 믿음 없는 자라고 핀잔을 주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협박과 공갈을 일삼는다. 그리고 헌금을 많이 하는 자들에게는 무조건 축복을 많이 받을 것이라며 하나님과 전혀 상관도 없는 축복을 남발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축복은 반드시 죄 값을 먼저 치르고 난 후에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 중에서 어느 누구를 들춰 봐도 하나님의 축복이 먼저 그에게 찾아왔다는 말은 없다. 반드시 고난이라고 하는 역경을 통해서 인간의 죄 값을 치른 후에 하나님의 축복이 찾아왔음을 성경은 증명해 주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참 선지자는 반드시 먼저 인간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거짓선지자들은 처음부터 인간들에게 달콤한 말로 다가가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죄를 짓지 않았다면 후자의 말이 맞겠지만,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인간은 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데 어떻게 처음부터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바라겠는가? 구약 때나 현재나 거짓목사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성도들의 잘못이 더 크다. 아무리 거짓목사들이 달콤한 말로 유혹을 하더라도, 과연 자신이 저들의 말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생활은 해왔는지 안 해왔는지 한번만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았더라면 저들의 말이 전혀 근거 없는 말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그런데 자신의 삶은 전혀 뒤돌아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축복만 받으려다 보니 거짓 목사들의 속임수에 보기 좋게 당하고 마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거짓 선지자 거짓 목사들은 언제나 진짜보다 앞서서 득세하며 큰소리를 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참 목자들은 한 세대에 겨우 한두 명에 불과한데 비해서 거짓 선지자, 거짓 목사들은 인간의 수효를 따라서 얼마든지 자의적으로 양산되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거짓 선지자, 거짓 목사가 우후죽순처럼 양산되어지는 것은 어둠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참 목자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기 보다는 자신들과 똑같은 목소리를 내는 거짓 영들의 달콤한 말들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딤후4:3).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만 보더라도 진짜보다는 가짜들이 훨씬 더 득세하며 판을 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세상은 모두가 사단에 발아래 놓여있기 때문에 인간이 사는 어디를 둘러봐도 항상 거짓이 들끓기 마련이다.
오늘날 너도 나도 똑같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고 있다지만,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영안이 열려있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게 되면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누가 마귀의 자녀인지를 몰라서 무턱대고 그들의 말만 믿고 따라가다 보면 영락없이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져서 영영 그곳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 보면 거짓 선지자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참 선지자보다는 거짓 선지자가 훨씬 더 많은 숫자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언제나 거짓 선지자들은 참 선지자보다도 훨씬 더 요란한 소리를 내며 활동을 한다. 어둠속에 살고 있는 아둔한 백성들은 그런 거짓 선지자의 말들을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전해주는 말씀은 일단은 껄끄럽기 때문이다. 말씀이 껄끄럽다는 말은 인간의 죄악을 들추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비해서 거짓 선지자들은 인간의 숨은 죄악을 들추어내기보다는 인간의 허물을 덮어주는데 목적이 있다 보니, 인간들 쪽에서 바라볼 때 그것이 훨씬 더 하나님의 사랑처럼 따듯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짓들은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든 간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백성이면 무조건 모두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거짓을 유포하기 때문에 미련한 인생들은 그들의 말을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내심 속으로는 그들도 그것을 바라던 말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정말로 성령의 보내심을 받고 온 참 목자는 성령의 목소리를 내기 때문에 인간들의 죄악에 대하여 질책을 하신다. 그러다보면 어둠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은 당연히 그 소리가 듣기 싫은 것이다. 성령님 역시 본질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당연히 인간의 죄악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밖에 없다. 고로 성령께서도 인간의 마음속 깊숙이 숨어있는 죄악을 들추어내시는 것이다.
그럴 때 그것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비해서 스스로 목사가 된 사람들의 말은 어떠한가? 속에서 살을 썩게 만드는 피고름을 짜내서 치료하기 보다는 허물이라는 미명하에 피고름을 자꾸만 덮어주다 보니 우선 당장 보기에는 그것이 좋아 보이는 것이다. 그러나 훗날에는 그 피고름이 모든 살을 썩게 만들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구약의 참 선지자나 오늘날 성령으로 사역하는 참 목사라도 인간들에게 생명은 불어넣어 줄 수 없다. 그들은 오직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안내하는 역할만 했던 사람들이다. 따라서 죽은 영혼을 살릴 수 있는 분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 한 분뿐이시다.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안내하였듯이, 오늘날 거짓목사들도 한결 같이 영적인 백성들을 배나 더 지옥자식 만들어놓고 있다(마23:15). 계시록에 보면, 한 별이 나와서 사람들에게 쑥물을 먹여서 죽이게 된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별 이름은 쑥이라 물들의 삼분의 일이 쑥이 되매 그 물들이 쓰게 됨을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더라” (계시록 8:1)
쑥물이란 바로 ‘죽은 영’(鬼神)을 마음속에 가진 자가 그리스도를 가장하여 사람들에게 말씀을 표현한 것이다. 그 쑥물을 받아먹은 자들 또한 ‘거짓 영’의 지배를 받게 되어 죽어가는 것이다. 쑥물(거짓)에 길들여진 자들은 좀처럼 진리(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쑥물(거짓)을 참 진리로 알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말씀을 잘못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쑥물을 먹이는 사람은 다름 아닌 오늘날 ‘거짓 영’을 받은 목사들을 두고 하는 말로서 겉으로 보면 그들은 아주 인자하고 후덕하게 생겼기 때문에, 누구도 그가 쑥물을 먹이는 거짓 목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때 분별력이 없는 교인들로서는 성경의 해박한 지식과 더불어 인자하게 생긴 목사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 것을 외칠 때, 교인들은 그런 목사들을 철석같이 믿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자고 해놓고, 사람들 비위나 맞추며 세상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생색내는 일만 찾아서 하는 것이다. 일 년에 한두 차례 고아원이나 양로원을 방문하여 봉사하는 것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랑이라 말한다. 그리스도 없이 육신의 생각으로 가르치는 모든 것이 교인들에게 쑥물을 먹이는 행위이다.
인간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진리를 가장한 거짓이다. 거짓은 인간을 파멸로 몰아넣는다. 예수께서는 거짓의 아비를 ‘마귀(魔鬼)’라고 했다. 그리고 그 졸개들을 ‘귀신(鬼神)’이라 부른다. 지금 이 시간에도 얼마나 많은 뭇 영혼들이 진리도 없는 거짓 목사들의 달콤한 말에 속아서 자신의 영혼들을 도둑맞고 있겠는가? 그것도 실상은 자업자득이라 하겠다. 그들이 성경을 조금만 유심히 살펴보고 또한 하나님께서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거짓 목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지껄이는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말에 그처럼 쉽게 속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은 딱 감춘 체 무조건 하나님의 축복만 받아내려다 보니까 거짓목사들이 마음 놓고 자신들을 속여도 성도들은 전혀 그런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거짓 목사들은 성령과 그리스도 영을 삼위일체 논리 속에 가두어 놓고 동일한 영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는 하나님을 자신들이 만든 교리 안에 가두어놓고 꼼짝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만든 교리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무조건 이단으로 매도하는 것이다. 영으로 오신 예수를 믿기 위해서는 자신의 자아와 더불어 자신이 지금까지 믿고 따르던 기독교 교리와 인간이 만든 교회법을 버리지 않으면 누구도 쉽게 아들을 믿을 수가 없다. 유대인들도 조상 대대로 내려오던 ‘전통(인간이 만든 교리)’을 따르다가, 결국은 예수를 믿지 못하고 멸망으로 가고 말았다. 인간이 만든 교리는 결국 사단이 인간을 통해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늘나라는 세상과 달리 위계질서가 철저한 곳이다. 루시엘이 자기 직분을 망각하고 영계의 위계질서를 어지럽히다 하늘에서 쫓겨나서 마귀가 되었다. 유대인들 중에서도 자기 직분을 망각하고 설치다가 망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다. 이는 오늘날 기독교 목사들 속에도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을 망각하고, 더 크고, 더 높고, 더 화려한 것을 쫓다가 성령의 은사마저 모두 빼앗기고 마지막에는 악한 영의 사주를 받아 교회에서 해괴망측한 짓을 벌이고 있는 자들이 한둘이 아니다. 오늘날 이단으로 매도되는 자들이 대부분 이런 자들이다.
예전이나 지금도 많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목사들은 사람 손으로 지은 건물 속에 그리스도가 계신 것처럼 가르치고 있다. 이단으로 분류되는 자들에게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신천지 같은 곳은 과천 땅에다 그리스도 왕국을 건설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자꾸만 교회 건물을 크고 화려하게 짓는 교회들도 땅에다 왕국을 건설하겠다는 신천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는 자들치고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실 것은 만무하기 때문이다.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인간의 마음속에다 성전 짓기를 희망하신 다는 사실을 안다면 기독교인들은 당장에 겉모습을 꾸미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날 아무리 교회가 크고 화려해도 그곳이 그리스도의 성전이라 말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성도들이 구름처럼 몰려드는 교회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 계시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직 인간의 마음속에다 성전 짓기를 소망하신다. 이를 망각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해서 혹은 크고 웅장한 교회라고 해서 그런 곳에서 그리스도를 찾고자 하는 자들에게는 오직 마귀의 미혹만 받게 될 것이다.
기독교 역사가 시작된 이래 2000년을 넘겨 지금은 알곡을 추수할 때이지만 눈을 들어 어디를 둘러봐도 알곡(예수모습)은 보이지 않고 온통 가라지(거짓)들 뿐이다. 꼭 전문농사꾼이 아니더라도 이제는 추수 때가 가까워져 이삭이 패기 시작했기 때문에 얼마든지 초보농사꾼들도 가라지들을 분별할 수 있다. 그래서 이제는 불신자들마저 예수가 어디 있고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반문한다. 기독교인이 현재 이 지구상에 20억이라는데 알곡의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가라지들로 꽉 차있다는 증거다.
가라지라도 하나님께서 만들고자 하시면 얼마든지 알곡들로 바꾸어놓으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한다. 그러나 이 은혜를 덧입기 위해서는 인간이 그리스도를 먼저 만나야 하는데 먼저 자신의 죄를 실토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즉, 자신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나라는 인생은 죄로 죽고 그리스로 말미암아 비로소 내가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거짓 목사들은 이런 절차도 없이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모두가 죽은 후에 천국 갈 것이라고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천국에서 온 주인도 아닌 주제에 어떻게 다른 사람들에게 천국 갈 것이라고 입에 침도 안 바르고 뻔뻔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겉으로 그럴듯하게 꾸미고 자신을 위장하는 자들을 특별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그런 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나 자신부터 외식적인 삶을 버려야 한다. 나를 버리고 않고 그런 자들을 비판하는 것도 그렇지만, 결국 나를 버리지 않게 되면 나 역시 그들의 유혹을 물리칠 수 없게 된다. 이로보건데 결국 모든 문제는 나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이다.
내가 나를 낮추고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려 할 때, 진실하신 주님께서도 나를 붙잡아 주실 것이지만, 내가 하루살이 인생처럼 겉치레로 살기를 원한다면 나를 에워싸고 있는 주변 환경도 온통 나를 거짓들의 함정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내 인생이 성공할 것인가 실패할 것인가는 오로지 나의 마음속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바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