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자와 악한 자
우리가 “선하다 악하다”고 말하지만 실상 그 판단은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 죽은 영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인간으로서는 선과 악을 판단하는 능력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자신의 눈으로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분하고 있다. 모세나 선지자들도 선악을 판단할 수 없으며 오늘날 목사나 신학자들도 또한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인간이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려면, 적어도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산 영이신 그리스도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즉 산 영의 지배를 받는 자만이 선악을 판단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아침 이슬을 벌이 먹으면 꿀이 되고, 독사가 먹으면 독이 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똑같은 것을 두고도 누가 그것을 먹었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부엌에 있는 칼도 주부가 그것을 손에 쥐면 요리하는 데 사용하지만 강도가 손에 쥐면 흉기로 사용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의 마음자세에 따라서 얼마든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받아들이는 인간들도 마찬가지다. 똑같이 하나님 말씀을 받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생각에 따라서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가령 사단(죽의 영)의 지배를 받는 인간이 하나님 말씀을 받게 되면, 그는 그 말씀으로 남을 정죄하거나 비판하는데 사용하거나 더 나아가서는 구원 받았다는 말로 현혹하여 다른 사람들을 배나 더 지옥 자식 만드는데 사용한다. 그러나 그리스도 영의 지배를 받는 자가 하나님 말씀을 받게 되면 그는 말씀으로 먼저 자신을 살펴서 죄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며, 결국은 이웃의 영혼을 살리는 그 말씀을 사용한다. 바울이 그리스도로 거듭난 후 자신을 죄인 중에 괴수로 고백했던 것은 비로소 그가 낮아졌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죄인으로 낮추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으로 늘 자신을 살피기 때문에 그 말씀이 약이 되지만, 자신을 높이는 자는 항상 마음이 높아져 있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모두 자신을 치는 소리로 들리게 되니 기분 나쁘게 받는 것이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은 인간의 마음속에다 높은 울타리를 치고 자신이 넣어주는 생각 외에는 그 어떤 외부의 말도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방해하고 있다. 교만한 자일수록 이런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즉, 자신을 낮추는 자는 그만큼 죽은 영의 지배를 덜 받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게 되나, 교만한 자는 죽은 영의 지배를 강하게 받기 때문에 어떤 말을 해줘도 모두 기분 나쁜 소리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말을 들었을 때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인간이 기분 나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이 기분 나쁜 것이다. 겉으로 선하게 생긴 사람도 그의 마음속을 긁는 소리를 하게 되면 대번에 얼굴을 붉히며 대드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한편 예수께서 아브라함의 혈통으로 태어난 것과 결코 남의 종된 적이 없다고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8:31,32)”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유대인들이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되리라 하느냐(요8:33)”며 강하게 반발한다. 그들은 육신적인 혈통관계를 말하고 있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를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반발에 예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종은 영원히 집에 거하지 못하되 아들은 영원히 거하나니,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요34-36)”고 대답하신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심은 “너희 중에 율법을 거역하지 않고 사는 자가 있으면 손들어 보라!”는 말이다. 그러면서 “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줄 아노라! 그러나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으므로 나를 죽이려 하는 도다(요8:37)”라는 의미로 하신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이 당장 예수를 죽이려 했다기보다는 그들 마음속에 살인하는 영이 들어 있음을 비유적으로 설명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인간 중심에 들어 있는 죄악을 보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인간이 그 말씀을 육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마귀 꾐에 넘어가 돌이킬 수 없는 함정에 빠지고 말게 된다.
좋은 예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했던 말을 마귀는 그것을 교묘하게 속여서 “선악과를 먹으면 네 눈이 밝아져 너도 하나님처럼 될까봐 못 먹게 하는 것”이라고 하와에게 거짓말을 했다. 그러자 단번에 하와가 호기심이 발동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다. 하와가 죄악이 들어오기 전에는 발가벗고 살았어도 창피한줄 모르고 살았는데, 선악과를 따먹자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끊어지고 그로 말미암아 죄악이 들어오게 되자 당장 자신에게 창피함이 느껴지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하와는 그것이 곧 자신의 눈이 밝아지는 것으로 착각하여 아무런 의심 없이 남편에게도 선악과를 주어서 먹게 했던 것이다.
마귀는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을 속이고 어떻게 하든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도록 만든다. 또한 마귀 졸개들은 죄악으로 가득찬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귀신)들로 하여금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예수가 영으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을 가로막고 있다. “내 말이 너희 속에 있을 곳이 없다(요8:37)”고 하시는 이 말씀도 바로 죽은 영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못 들어오게 하고 있다는 말이다. 유대인들은 무려 2천년 동안이나 하나님을 믿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 마음속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거할 곳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입술로만 하나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던 인간들의 모습이다.
독사는 태어날 때부터 독을 갖고 태어나지만, 인간은 처음에는 모두 선하게 지음 받았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뱀의 꾐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과 멀어지자 그 자리를 마귀가 꿰차고 들어온 것이다. 이 후부터 모든 인간은 사단의 지배를 받는 하수인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사단은 세상 것을 지배하는 임금이다. 인간이 세상 것을 탐내고 욕심내는 이유는 모두 사단의 지배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기 전까지는 마귀가 세상 임금이었으나 죄 없는 예수를 죽인 마귀는 불법자로 전락하여 지금은 숨어서 활동하고 있다. 그리고 현재는 마귀의 졸개들인 죽은 영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 인간에게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는 것은 모두 죽은 영이 인간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자꾸만 자신을 낮추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죽은 영의 활동을 제한하실 목적으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인간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죽은 영의 활동이 또한 그만큼 폭을 넓히게 된다. 교만한 자들의 특징은 자신만을 최고로 여긴 나머지 다른 것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런 자에게는 아무리 좋은 말씀을 들려주어도 귀를 닫고 더 이상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교만한 자의 모습이다. 악한 자는 처음부터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죄를 지을수록 죽은 영은 인간을 더욱더 강하게 지배하게 된다. 똥이 많은 곳에 많은 똥파리 때가 날아드는 이치와 똑같은 것이다.
우리가 착한 사람 혹은 악한 사람이라고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상에서 선한 일을 많이 한 사람을 착하다고 말하고, 악행을 일삼고 다니는 사람을 악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선한 자와 악한 자로 구별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자와 악한 자를 좀 더 정확히 구별해 내기 위해서 믿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던 것이다. 율법을 주시기 전에도 법이 세상에 있었으나 그러나 세상 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요 귀에 걸면 귀걸이라 그런 고무줄 법으로는 인간들 속에서 선한 자와 악한 자를 구별해 내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좀 더 엄격한 법을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율법을 통해서 어느 누가 자신을 죄인으로 혹은 의인으로 여기고 나오느냐에 따라서 천국과 지옥을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좋은 예로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자신을 의롭다고 여기던 바리새인들은 사사건건 예수에게 시비를 걸다가 끝내는 예수를 로마군에게 팔아넘기는 우를 범하여 스스로 악한 길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세리와 창기 같은 자들은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고 예수를 찾게 되자 그들은 예수로부터 불쌍히 여김을 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러나 자신을 의롭다고 믿고 있던 자들은 마음이 높아져 있어서 마귀가 그들의 마음을 이간질시켰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못했으나,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고 있던 자들은 마귀가 그들의 마음을 이간질시키지 못하게 되자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예수께 달려 나왔던 것이다.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은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 말씀을 못 듣게 한다. 만약에 하나님 말씀을 듣고 인간이 자신의 죄악을 깨닫게 되면 죽은 영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한다. 그래서 하루라도 더 인간을 지배하고 싶은 죽은 영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못 듣게 하려는 것이다.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계시록 10:10)
이를 직역하면 하나님 말씀을 처음 받을 때는 기분 좋게 들리나 주의 말씀이 내속에 들어 있는 죄악을 지적하게 되니 몹시도 기분이 나쁘더라는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은 “우리의 혼과 영을 찔러 쪼개기까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하시기 때문에 입에는 다나 뱃속에 들어가면 쓰게 되는 것이다(히4:12).” 죄악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이 처음 하나님 말씀을 받게 되면 기분 좋을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그러나 선한 자는 그 말씀으로 자신을 살펴서 점차적으로 죄인이 되어 가는 것이다. 자신을 낮추고 죄인이 된 자는 장차 오실 아들을 눈과 귀로 직접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또한 인간을 지배하고 있는 죽은 영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역량을 총 동원하여 높은 곳에서 절대 내려오지 못하게 한다. 가령, 세상에서 잘 나가는 자는 보잘것없는 자의 말을 무시하게 만들고, 세상 학문에 뛰어난 자는 무식한 자의 말을 무시하게 만들며, 돈 많은 부자는 가난한 자의 말을 무시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악한 영은 인간의 높아진 마음을 이용하여 천하고 낮은 자리에 오신 주님 말씀을 철저히 무시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만한 자들이 멸망으로 가는 이유는 바로 자신을 볼 수 있는 눈과 귀가 닫혀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인간은 별것 아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많이 배운 자가 있고 돈이 많은 자가 있어도 그 인생은 결국 물거품과 같은 것이다. 문제는 어느 누가 주님 손에 붙들려 사느냐가 문제다. 주님 손에 붙들려 사는 자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자요 가장 부유한 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 세상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다고 말했던 것이다(전2:1-26). 인간으로 가장 큰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은 하나님 손에 붙들려 사는 것만 못하다는 것이 그에 지론이다.
오늘날 불신자로 살다가 예수를 믿고 처음 성령을 받게 되면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게 된다. 처음에는 모든 사람이 다 사랑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금방 눈이라도 빼줄 것처럼 호들갑을 떨지만 그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성령을 거역한 죄인이 되어 처음 받았던 기쁨도 사라지고 점점 마음이 황폐케 되어 간다. 이는 죄인이 되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사실 이것이 죄(법) 아래 사는 인간의 진짜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렇게 되어 가는 것을 오히려 두려워한다. 그리하여 겉모습을 아주 예수님처럼 선하게 포장하는 것이다. 마귀는 바로 이틈을 노려서 성령을 그리스도 영으로 둔갑시킨 다음 믿는 자들로 하여금 모두 구원 받았다는 말로 그들을 안심시키는 것이다. 마귀가 믿는 자들을 속이는 이유는 바로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