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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에 대한 마귀의 시험

“그때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 덩이가 되게 하라” [마태복음 4:1~3]

 

성령께서는 왜 예수를 광야로 이끌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도록 하셨을까? 그리고 예수는 죄 없는 하나님 아들인데 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아야 했을까? 누가 이 말씀을 정확히 해석할 수 있을까? 기독교인 중에서 위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성령이 아닌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가 알려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영을 받지 않은 자가 말씀을 해석하게 되면 그것은 수박 겉핥기에 불과하다. 하나님의 속사정을 알려면 아들이 알려주어야 하듯이, 예수의 속사정을 알려면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가 알려주어야 한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받지 않은 자가 성경 말씀을 해석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수께서 마귀와 싸움을 벌인 세 가지 사건을 마태복음 4장에 기록한 것은, 마치 창세기 4장에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기록한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아담의 직계 후손인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 앞에 어떤 자세, 어떤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을 자세히 보여주었다면, 예수께서 마귀의 시험을 이긴 사건은 앞으로 예수를 믿고 따르고자 하는 자들이 어떻게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나와야 하는지를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예수처럼 모두가 이런 시험을 통과하고 나온 사람들일까? 기독교인 중에서 예수처럼 마귀의 시험을 모두 이긴 자는 생명의 면류관을 쓰고 천국에 들어가겠지만, 만약 마귀의 시험에서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어 영원히 그의 하수인으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예수는 죄가 없는 하나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왜 마귀의 시험을 받아야 했을까? 그것은 이 세상은 모두가 마귀에게 속해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아무리 하나님 아들이라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세상 임금인 마귀의 시험을 거쳐야 한다. 하나님이라도 이런 위계질서는 무시하지 않는다. 우리 생각으로는 무조건 마귀를 멸하고 구원 사역을 펼치면 될 것 같지만, 영들의 세계에서는 이런 위계질서가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이런 위계질서를 무시하면, 그는 범법자로 영들의 세계에서 쫓겨나야 한다. 루시퍼가 영계에서 쫓겨난 이유가 바로 이런 영적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예수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세상 임금인 마귀를 합법적으로 멸한 후에야 비로소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 모든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인간 또한 흙으로 빚어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生靈)이 되게 하셨다. 동물과 달리 인간을 영적인 존재로 만드신 이유는 하나님과 교통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 교제가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끊어지고 말았다. 아담이 범죄를 짓게 한 자는 하늘에서 쫓겨난 마귀다. 마귀는 원래 선하게 지으면 받은 천사였으나, 그가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려다가 하다가 그만 이 세상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영적인 존재가 피조된 세상으로 쫓겨났다는 것은, 범죄자를 일단 유치장에 가둔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이 세상은 마귀를 심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감옥이나 다름없다. 마귀는 하늘에서 쫓겨난 후 이 세상의 임금이 되었고, 불행히도 아담의 후손인 모든 인간은 마귀의 발아래 놓여 그의 종이 되었다.

 

예수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마귀의 시험을 거쳐야 하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예수를 믿고 따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과 싸움(영적인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가나안 땅에 살았던 아모리 칠 족속(신7:1-2)이 지금은 모두 부패한 인간의 마음속에 들어있다. 따라서 그들과 치열한 영적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리하여 이긴 자는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실 것이나, 진 자는 마귀의 손아귀에 들어가서 그의 하수인 노릇을 해야 한다. 자신이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인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자신의 죄를 들고 그리스도 예수 앞에 쉽게 나아갈 수 있겠지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도리어 성령으로 구원받았다고 믿고 있는 자들은 마귀에게 속아서 좀처럼 아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를 두고 자신과 싸움에서 졌다고 하는 것이다.

 

불신자로 살던 자가 전도를 받고 예수 믿기는 쉽다. 전도를 받은 자가 예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성령을 은혜의 선물로 보내주신다. 이는 예수가 십자가에서 흘려준 피 값으로 주시는 선물이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다고 하여 곧장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다. 여기까지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 백성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기독교인들은 율법을 육체에 받은 유대인들과 달리 성령의 법을 마음속에 받은 영적인 하나님 백성들이다. 영적인 백성들에게는 악한 영들 또한 모두 마음속에 숨어있다. 마귀가 예수를 떡과 능력과 천하만국으로 시험했듯이, 오늘날 기독교인들에게는 돈(재물), 이성(음란), 자랑(교만), 권력(명예)으로 시험하게 될 것이다. 제아무리 성령을 충만히 받은 자라도 잠시 잠깐은 이런 시험을 이길 수 있을지 몰라도, 잠도 자지 않고 24시간, 365일, 10년, 20년을 따라다니며 시험을 걸어오는 마귀의 시험을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이런 시험을 이기기 위해서는 육신의 소욕을 모두 버려야 한다. 그런데 성령의 법 아래서는 결코 인간의 소욕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날 아무리 예수 이름으로 예배를 드리고 금식기도를 해도 그때뿐, 시간이 흐르면 또다시 육신의 소욕은 올라오게 되어 있다. 인간의 부패한 마음속에는 항상 악한 영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악한 영은 인간들이 좋아하는 세상 것(돈, 음란, 명예)들을 이용하여 누구도 자기 손아귀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 오늘날 이런 것들이 기독교인들의 마음을 지배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이 보내주는 아들을 믿지 못하는 것이다.

 

오늘날 성령의 법에 따라 사는 기독교인들로서는 어느 누구도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나올 자가 없다. 예수께서 마태복음 4장에 이런 말씀을 기록했던 것은, 바로 “인간 스스로는 어느 누구도 이런 시험에서 이길 수 없으니 모두가 나를 믿고 그리스도로 거듭나야 이런 시험을 이기고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자마자 사단의 시험을 몸소 받으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고 무조건 예수 믿고 성령만 받으면, 누구나 이런 시험을 이기고 나올 것처럼 생각했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 사도 바울이 예수를 만나고 나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끝까지 모든 시험을 이겨내고 주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바울 마음속에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이다.

 

한편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이 성령을 거역하고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죄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머리카락 하나하나까지 모두 세고 계시듯이, 인간이 지은 모든 죄를 다 헤아리고 계신다. 하나님께서 죄를 헤아리고 계시는 이유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죄를 핑계치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생각하는 죄의 관점과 인간이 생각하는 죄의 관점이 다른 점이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바로 내 자신이다. 내 마음속에 악한 영이 들어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영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믿을 수도 있고 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요한 계시록에도 보면,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모두 자신과 싸움에서 이긴 자만이 천국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반대로 자신과 싸움에서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어 영원히 마귀의 종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계시록 2:7]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계시록 3:5]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하리라”

  [계시록 3:21]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베드로후서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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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 용문읍 삼성리 584-1 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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