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열쇠를 가진 자
예수께서는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과연 천국 열쇠는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일까? 그렇지 않다. 만약 베드로에게만 주신 것이라면 굳이 성경에 기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내용을 성경에 자세히 기록한 것은 천국 열쇠는 베드로뿐만 아니라 장차 이방인들 앞에 보낼 하나님 아들에게도 베드로와 똑같이 천국 열쇠를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성령의 법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죄에서 구원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앞에서 예언되었던 내용들이 반드시 뒤에 오시는 아들로 말미암아 성취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35:6). 이 말씀은 이사야가 장차 오실 메시아를 염두에 두고 기록한 글이다. 이렇게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내용들이 신약에 오신 아들로 말미암아 성취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에서 예언된 말씀들 또한 기독교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로 말미암아 다시 한 번 성취될 것이다.
또한 성경은 그 당시 상황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지만 다음에 나타날 세대의 일들도 동시에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우매한 인간들이 하나님 말씀을 육신의 생각으로 받아들여서 엉뚱한 길로 갈 때가 많다. 좋은 예로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 앞에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의 마음을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말4:5)”고 말씀하신다. 유대인들은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엘리야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엘리야를 대신하여 세례 요한이 나타나서 유대인들을 예수 앞으로 인도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엘리야를 대신해서 왔다는 사실을 제자들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면서 왜 엘리야가 먼저 오지 않느냐고 예수께 따져 물었던 것이다.
이런 일은 비단 유대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똑같이 그러고 있다. 성경에 보면 ‘예수께서 도적같이 다시 오겠다’는 말씀이 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마24:42).” 그러나 기독교인들 역시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 모두들 공중에 재림할 예수로 생각하고 있거나, 아니면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신 모습 그대로 오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 도적같이 다시 오시겠다’는 말씀은 공중에 재림할 예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신 모습 그대로 오시는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신다는 말씀은 앞서 엘리야를 대신하여 세례 요한이 왔던 것처럼 영으로 계신 예수 역시 다른 사람을 통해서 오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사람을 통해서 오다보니, 기독교인들이 그를 쉽게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어느 때, 어느 시기에 올지 모르기 때문에 도적같이 오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가 공중에 재림할 때는 이 세상 마지막 때에 땅에서 알곡으로 만들어진 자들을 공중에 불러 올려가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 그리고 땅에서 알곡 만드는 작업을 하시기 위해서 예수가 이 땅에 먼저 오시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이 매주 드리는 예배나 성찬식, 그리고 부활절 같은 행사들은 모두 장차 영적으로 오실 그리스도 모형들이다. 따라서 이런 모형 아래서는 아무리 오랫동안 예배를 드려도 속사람이 온전케 되지 않는다. 속사람이 온전케 되려면 영으로 오신 예수께서 믿는 자들 마음속에 들어가셔야 한다. 예수가 믿는 자의 마음속에 들어가게 되면 지금까지 모형으로 드리던 모든 예배와 성찬식 그리고 부활절 같은 행사들도 모두 폐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약성경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내용들이 기독교인들 앞에 영적으로 오신 하나님 아들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성취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로서는 이런 말씀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도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헐고 나를 믿으라고 말했을 때 그 말씀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영적으로 오신 주님께서도 모형 아래서 드리던 예배를 그치고,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들이 당장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기독교인들이 섣불리 판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육신의 생각으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섣불리 판단하다가는 사단이 틈탈 수 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말씀을 사사건건 판단하다가 도리어 사단의 하수인이 되어, 예수를 죽이는 데 앞장서고 말았다.
그렇다면 베드로에게 주신 천국 열쇠는 이방인들 중에서 어떤 사람이 받게 될까? 천국 열쇠는 아무에게나 주는 것이 아니다. 당시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입니다”(마16:16)하고 고백하는 자들에게만 주어진다. 우리가 볼 때, 이런 고백이 쉬워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절대 쉽지 않다. 당시 베드로 역시 자기 능력으로 예수가 하나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에 알게 되었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시고 있다. 이는 바로 인간의 힘으로는 하나님 아들을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이방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 예수 역시 기독교인들로서는 도저히 그를 알 수 없다. 아무리 성령이 충만하고 영성이 뛰어난 자라도 그를 찾아낼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예수께서 사람을 통해서 말씀(영)으로 오셨기 때문에 그의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알 수가 없다. 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그가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아야 한다. 그가 하시는 말씀은 이 세상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영과 혼과 관절을 찔러 쪼개기까지 인간의 죄악들을 샅샅이 찾아낸다. 그래서 자신을 죄인으로 여기는 자들은 믿고 따르겠지만 자신을 의롭다고 하는 자들은 마음속의 죄를 지적하기 때문에 듣기가 거북하여 믿기가 더욱더 어렵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인들 앞에 도적같이 오신 예수께서는 말씀을 통해서 영으로 오셨기 때문에 설사 기독교인들에게 말씀을 들려준다 해도, 그 말씀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인간의 생각으로는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가 하시는 말씀을 깨달을 자들도 있다. 그것은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자들이 그나마 깨닫고 믿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높아진 자들과 교만한 자들은 절대 영적으로 오신 주님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는 아들의 정체를 일부러 감추기까지 하신다.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께서도 계속해서 자신의 정체를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교만한 자들은 더욱더 못 믿게 하고 반대로 자신을 죄인으로 낮추는 자들은 아들을 더 잘 믿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비밀이다. 당시 예수도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살아 내려 왔더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가장 극형인 십자가에서 죽어버리자 저게 무슨 하나님 아들이냐며,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로부터 등을 돌리고 말았다. 하나님 목적은 이렇게 인간의 생각을 초월하여 이루어진다.
이제 기독교인들 앞에 천국 열쇠를 가지고 오실 하나님 아들에 대하여 살펴보자!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16:19). 이 말씀은 곧 인간의 죄를 사해주시겠다는 말씀이다. 이처럼 천국 열쇠를 가진 자는,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자의 죄는 사해줄 것이나. 반대로 자신을 의인이라 말하는 자의 죄는 그대로 둘 것이다. 예수도 자기 고향에서는 병든 자들을 고치지 못하였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여기저기서 회개를 외치고 있는 자들이 많으나 진정한 회개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 자는 없다. 기독교인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눈물 흘리며 회개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말 뿐이고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식으로 또 다시 똑같은 짓을 반복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오늘날 무조건 회개만 하면 모든 죄가 다 도말되는 줄 알고 있는데 이는 무식의 소치다. ‘진정한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버리는 것이다.
자신을 버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죄를 지었는가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을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하나님께서 주신 법(성령)을 어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이제 곧 영적으로 오실 주님 앞에서 자신을 완전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예전에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가 전적인 자기 책임이라며 잘못을 시인했다. 그 회개가 진정성이 있느냐 없느냐를 두고 세간에서는 말들이 많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란 대통령이라도 자신의 모든 직무를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이것이 진정으로 책임지는 자의 모습이다. 그럴 때 국민들은 그를 더욱더 높이 평가하여 다시 대통령직을 수행하라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하여 그녀가 다시 대통령직을 맡게 되면, 그전보다도 훨씬 더 겸손한 모습으로 국민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인간들 앞에 보내주신 이유는 바로 인간이 자신의 죄를 깊이 깨닫고 자신을 죄인으로 버릴 때 그들을 죄에서 건져주시게 하기 위해서이다. 좋은 예로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새벽녘에 돌아오자,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예수께서 깊은 곳에 가서 그물을 다시 던지라고 말한다. 그러자 베드로가 속으로 예수를 비웃으며 그물을 던진다. 그런데 베드로의 생각과는 반대로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이다. 그것을 본 베드로가 즉시,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며 자신이 예수를 비웃었던 것에 대하여 솔직하게 시인하는 것이다.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이제부터는 너로 하여금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4:19)”고 말씀하신다. 베드로가 자신을 죄인으로 버리자 예수께서 그를 다시 주워다 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통해서 인간들을 죄에서구원하시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