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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표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통해서 미리 말씀하지 않고는 그 어떤 일도 실행하지 않는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당시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을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어느 날 갑자기 그들에게 자식을 준 것이 아니라, 천사를 통해 그들 앞에 나타나서 앞으로 너희에게 자식이 있을 것을 미리 말씀하시고 이삭을 주셨다(창17:15-15,창21:1-3). 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시행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먼저 말씀하시고 그 일을 진행시키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실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혁됨이 없이 반드시 모두 다 이루어진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성경을 읽는 사람들이 말로는 성경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그 말씀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계시록에서 말씀하시는 “어린양이 인을 떼지 않으면 누구도 성경 말씀을 바르게 해석할 수 없다"(계6:1-17)와 같이 계시의 말씀은 그리스도로 거듭난 자가 해석해야 한다.

 

하나님은 장차 되어질 일들을 성경에 기록하셨기에 아무 의미 없는 글이 단 한 가지도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었으나, 그 중에서 이스마엘이 버림을 당하고 이삭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약속의 자녀가 되었고, 이삭의 후손으로 에서와 야곱이 있었으나 에서가 버림을 당하고, 야곱이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았다. 여기서 버림을 당한 이스마엘은 예수를 믿지 않았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며, 버림을 당한 에서 역시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영적인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버림당할 기독교인들을 염두에 두고 기록한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장차 이스라엘 땅에 나타나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실 예수의 예표라고 구약성경에서 몇 번이고 강조하고 계신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사실을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과 백성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하나님 아들이 그들 앞에 나타나자, 그들은 메시아에 대하여 반신반의만 할 뿐 누구도 섣불리 예수를 하나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이 육신의 눈으로 하나님 아들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차 자신들 앞에 메시아가 오신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그가 오셔서 자신들에게 무슨 일을 하실 것인가에 대하여는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성경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율법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고작 그들이 생각해낸 것이라면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메시아를 손꼽아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메시아란 자가 와서 하는 짓을 보니, 그들이 그토록 혐오스럽게 여기던 죄인들과 친구가 되어 먹고 마시는 것을 보고는 “저놈은 가짜다 죽여 없애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리 성경을 깊이 있게 연구한들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지 않게 되면 이런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 성전을 총 감독하던 대제사장을 비롯하여 수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누구 하나 메시아에 대하여 올바른 생각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같이 메시아가 오면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구원해줄 것으로만 믿었지, 그가 와서 자신들의 죄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리라곤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자신들을 거룩한 이스라엘 성민(구원 받은 백성)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그들로서는 메시아란 자가 와서 자신들을 죄인으로 몰아붙이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그들로서는 결국 자신들의 죄를 사해줄 구세주를 로마군에 내어주고 십자가에 못 박게 했던 것이다. 아무리 오랫동안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말하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을 깨닫지 못할 때 얼마나 엄청난 일이 벌어지게 되는가를 우리는 유대인들의 행위를 보면서 깨달아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이 또 다시 재현되려 하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야곱의 예표로 이방인들 앞에 메시아가 다시 오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리 분명히 말씀하시고 어떤 일을 시행하신다. 이삭이 이스라엘 땅에 오신 예수를 예표하고 있다면, 야곱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 한 사람으로만 이스라엘 백성들을 번성케 하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굳이 이삭에게까지도 자식을 주고 쌍둥이를 잉태케 하여 그중에서 야곱을 선택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번성케 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바로 이방인들 앞에 오실 메시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서만 하나님의 자녀들을 골라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바로 이방인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들을 골라내자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것이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의 자리를 빼앗는 사기꾼 같은 야곱을 버리고, 사내답고 씩씩한 에서를 선택함이 백번 옳은 일로 보이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각을 완전히 빗나가게 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이사야 55:9)

다시 정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이미 2천 년 전에 이삭을 예수의 예표를 주셨다. 그리고 정확히 그로부터 2천년 후에 당신의 아들을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보내주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약 4천년 후에 일어날 일까지도 이미 계획하고 계셨다. 리브가의 뱃속에서 쌍둥이가 잉태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큰 자를 버리고 작은 자를 선택하신 것은,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하나님 아들로 큰 자(에서 같은 자)를 버리고 작은 자(야곱 같은 자)를 선택하여 이방인의 구세주로 삼으실 것을 미리 예표하고 있다.

 

그럼 왜 하나님께서는 좀 더 사내답고 씩씩하게 생긴 형 에서를 버리고 지렁이 같고 사기꾼 같은 동생 야곱을 선택하셨을까? 그 이유는 야곱이 장차 이방인들 앞에 오실 하나님 아들을 예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나 하나님께서는 인간 마음을 보고 판단하신다. 이방인들은 성격이 거칠고 사나울 뿐만 아니라 다분히 사기꾼 같은 기질이 남아 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4천 년 전에 그런 이방인들의 습성을 잘 아시고, 이방인들 앞에 오실 하나님 아들도 바로 그런 야곱 같은 습성을 지닌 자가 아들로 오실 것임을 미리 예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이방인들 앞에 오시는 하나님 아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특성을 지니게 됨을 알 수 있다.

 

이방인들 앞에 오실 영적인 그리스도는 야곱처럼 천사와 씨름하여 이길 만큼 심지가 굳고, 에서와 맞설 만큼 거친 성격의 소유자를 통해서 오실 것을 예고하고 있다. 예수께서 이런 자를 통해서 오시는 것은 이방인들 모두가 사납기 때문이다. 돌처럼 굳어 있는 기독교인들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죄악을 들추어내기 위해서는, 그들 마음속에 예리하고도 날카로운 주님 말씀을 쏟아 부어서 숨어 있는 죄악들을 낱낱이 파헤쳐야 한다. 그래야 이방인들 모두가 자신의 죄악을 보고 그리스도 앞에서 자신의 죄를 실토하게 될 것이다.

 

다시 오시는 예수의 또 다른 예표가 바로 사도 바울이다. 예수께서 영(빛)으로 최초로 사람 마음속에 들어 가셨던 일은 사도 바울을 통해서다. 당시 예수의 열두 제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도 바울을 이방인의 사도로 삼은 것은, 바로 이방인들 앞에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기 위해서다. 그러니까 부활 하신 예수께서 영으로 이방인들 앞에 오실 때는 바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통해서 오시겠다는 것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만약에 그런 예표가 없이 예수께서 갑자기 이방인들 앞에 사람을 통해서 나타나서 말씀하신다면, 기독교인들이 “성경에 그런 예표가 어디 있느냐?”며 정통성을 부인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실을 아시고 바울을 이방인들 앞에 오실 그리스도의 예표로 세운 것이다. 이를 두고 예수께서도 “내가 도적 같이 가리라"(마24:43-44, 계3:3)고 말씀하고 있다.

 

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그리스도의 영)으로 찾아오신 예수를 만났다. 그는 율법학자요 철저한 바리새인이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만나고 나서 360도로 달라졌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열두 제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를 선택하여 사도로 삼았는가? 그것은 바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주기 위해서다.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전했던 복음은 단순한 복음이 아니다. 하늘로 승천하신 예수께서 그리스도 영으로 바울의 마음속에 오셔서, 바울의 입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했다. 바울은 자신이 기록한 말씀을 남기고 AD 65년경에 목베임을 당해 죽었다.

 

그 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예수를 믿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도 성령을 선물로 보내주셨다. 그러나 이방인들이 예수를 믿고 받은 성령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를 믿고 받은 성령과는 차원이 달랐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 아래 갇혀서 약 2천년 동안 힘들게 살다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으면 그것으로 그들은 온전한 구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형에 불과했던 것처럼 현재 성령의 법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 또한 모두 모형에 불과하다. 모형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율법 아래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었기 때문에 예수가 오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성령의 법 아래 살고 있는 기독교인들도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래서 바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빛(영)으로 찾아오셨던 예수께서 이방인 중에서 한 사람을 미리 선택하여 빛(영)으로 그에게 찾아오신 후, 그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열매 맺는 사역을 시작하시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바울의 입을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전해준 복음이 기독교 역사 2천년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것은 실체가 아닌 모형이요, 그림자의 삶이다. 이제 2천년이 지난 말미에 또 다시 예수께서 그리스도 영으로 오셔서 이방인 중에서 사도 바울 같은 자를 미리 선택하여, 그의 입을 통해서 이방인들 중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작업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영으로 오셔서 이방인 중에서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작업을 마치고 나면 그때 이 세상은 계시록이 말하고 있는 대로 쭉정이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세상과 함께 불사름이 되고, 알곡은 공중에 들림 받아 하나님 곡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란 말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로서 예수로 시작했으니 예수께서 마감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예나 지금이나 오직 죄인을 찾아 구원하는 일이다(막2:17,눅5:32). 율법 아래 살던 유대인들은 율법을 거역한 죄를 들고, 그리스도 앞에 와서 자신의 죄를 실토하면 예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들을 모두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들 앞에 오신 그리스도 역시 성령을 받은 기독교인들이 성령의 법을 거역한 죄를 들고 나와서 자신의 죄를 실토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해주시고 그들을 모두 구원에 이르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 당시 바리새인들처럼 끝까지 자신을 의롭다 일컫는 자들은 성령을 거역한 죄를 사함 받지 못하여 스스로 멸망의 길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와 불교 또는 이슬람교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를 구분하나, 하나님 아들은 그런 것들을 전혀 따지지 않는다. 만약 불신자들 역시 “나는 지금까지 양심에 가책 느낄 만한 일을 전혀 하지 않았다”며 자신을 의인으로 치부하는 자들 역시 영원히 버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자가 지금까지 불교에 속해 있을지라도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아들 앞으로 나오는 자는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하나님 백성이 된 자라도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에만 고무되어 자신의 죄를 깨닫지 못하여 아들 앞으로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이 성령을 거역한 죄 때문에 불지옥에 떨어지게 될 것이다. 유대인들이 죽어라고 신앙생활을 하고도 결국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을 믿지 않아서 버림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한다면 오늘날 기독교인들 또한 이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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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양평군 용문읍 삼성리 584-1 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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